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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 제 5장 우주의 기원부터 갈릴레이 종교재판까지 본문

KNOU_CS/인간과 과학

제 1장 ~ 제 5장 우주의 기원부터 갈릴레이 종교재판까지

2sac 2024. 6. 26. 20:26

제 1장 우주의 기원과 우주론 

 

가상의 실험실에서 우주를 압축해내어 공간은 존재하지 않지만 물질과 에너지가 존재하는 모순적 상태가 됨 == 특이점 

특이점으로부터 대폭발이 시작됨. 

 

 1조분의 1초 이하 대폭발

커다란 에너지 생성 

소립자, 전자, 수소 원자핵 

수소와 헬륨원자(-> 초기 별(고온에서 수소의 핵융합-> 헬륨 이후 핵융합-> 탄소, 질소 발생 후 핵융합 -> 알루미늄, 철(금속원자)))

 

철보다 무거우면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않고 소비함. 철보다 원자번호가 많은 코발트 이후의 원소들은 초기별에는 없고 나중에 더 질량이 큰 초신성(슈퍼노바)가 폭발할 때 생성됨.(-> 고에너지 중성자 방출, 원자핵이 중성자를 흡수(-> 양성자 수 증가, 원자번호가 더 큰 원소로 변환): 코발트 ~ 우라늄) 

 

우주가 138억년 전쯤 대폭발로 생성된 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바탕을 둔 연구로부터 유래함. 

조르주 르메르트 1930년 대폭발설 -> 조지 가모프 -> 스티븐 호킹 etc 1960년대 정설 

프레드 호일 1940년 정상상태우주론, 아인슈타인 -> 1960년대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이 발견 후 설득력 상실 

 

 

고대 그리스인의 우주 

 

우주운행은 신의 활동으로 설명하거나 신의 개입으르 배제하고 자연현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나옴(그리스) 

자연주의적 우주관 with 물질이론 : 자연과 우주를 관찰하고 설명이론을 만듦. 

 

철학자 포퍼(1902~1994) "과학을 지식의 집합체가 아닌 가설 또는 추축의 체계로 봐야 한다." == 그리스 자연철학자 부합(->밀레토스 최초의 철학자이자 과학자 탈레스)

 

이집트의 태양력, 1년 365일, 24시간 발명 -> 율리우스 카이스르 -> 교황 그레고리우스 로 발전 / 이집트는 병은 악마가 

바빌로니아 실용적으로 곡물의 양 계산, 왕국의 운명을 점치기 위한 수단으로 별 관측 

두 나라 모두 세계관을 구축하지 않음(<-> 탈레스의 만물 근원 물)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 

- 세계란 작용하는 원리(arche)를 포함하는 아페이론(apeiron:무한하고 확정할수 없고 처음과 끝이 없는 것) 주장 

- 생명체는 축축한 것에서 자연발생 

 

밀레토스의 아낙시메네스 

- 세계의 근원물질은 공기(희박과 농축에 따라 물체 생성) 

- 탈레스의 물 기원론에 비판(공기나 흙같은 물질을 보며) 

 

밀레토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자기주장을 다른 사람의 것보다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음(근대과학의 특징)

 

고대 그리스와 나머지 지역은 정치 제도가 달랐고 이것이 과학출현에 중요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측함. 

이집트, 바빌로니아, 중국(전제군주제) 

고대 그리스의 밀레토스(독립국가, 민주정)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철학은 '관찰과 사변' 두 요소가 있음. 

관찰(오관(감각)을 이용)

사변(정신이용)

이들은 감각과 정신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음. (<->의심하는 자들이 등장함: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정신과 감각을 의심하고 해석을 시도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감각을 신뢰안함, 정신(로고스)가 해석할 수 없다면 쓸모없는 것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판타레이' 결론, 불(근원물질)

 

파르메니데스: 엘레아 학파/ 감각을 통한 지각을 인정하고 제대로 해석이 중요, 감각을 통해 얻는 것은 모두 환상/ 오로지 믿을건 이성 / 변화에 대해서 헤라클레이토스와 달리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며, 모두 외견상 그럴 뿐이라고 함. / 변화란 없기 때문에 존재는 하나이며 존재의 다양성도 불가함. / 감각과 변화에 대한 이 입장은 이후 철학자들에게 검토 대상이 됨. 

 

엠페도클래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모크리토스 

 


 

제 2장 고대 그리스의 물질이론 

5세기 중엽 엠페도클래스: 파르메니데스의 영향 받음-> (감각 뿐 아니라 정신도 불완전) 지식을 얻으려면 모든 수단 동원해야 함/ 만물의 뿌리는 '흙, 물, 공기, 불'이고 이것들은 변화안함. 파르메니데스와 달리 네 개의 존재가 있고, 변화를 설명하려 했으며, '사랑과 미움'이라는 두 가지 원리로 각 존재가 결합되거나 분리됨. 

 

아낙사고라스: 파르메니데스의 문제에서 시작-> 감각이 불완전해도 감각으로 얻은 것을 기초로 관찰 불가능한 것을 사변할 수 있음/ 다양성에 대해 엠페도클래스의 생각을 확장해 변화하지 않는 씨앗이 무수히 많다고 봄, 가장 많은 씨앗이 형태로 드러남(우세한 형질의 발현) ->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재발견 

 

 

 

 

원자론의 등장 및 대표(엘레아 학파의 무변화 사상에 기원)/ 원자는 단단하고 균일하며 그 자체로는 변화되지 않고, 창조, 생성, 소멸 안함. 

 

레우키포스

 

데모크리토스 

수많은 원자와 무한한 허공, 끊임없이 움직여 부딪혀 결합하거나 분리됨.

원자 <- 파르메니데스[영원한 불변])

원자들이 허공을 이동하며 결합분리 <- 헤라클레이토스의 영원한 변화 

허공(= 비존재) 

다양성 = 원자들의 위치, 배열, 모양의 차이 

 

 

 

 

 

종교적, 신비적 전통으로 활동한 6세기 피타고라스와 제자들 

자연철학자 종교적 신비적 전통 철학자 
모든 물체는 근원물질이 있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 우연히 존재
신들도 인간이 고안한 것 

아리스토텔레스 
영혼이 어떤 물체보다 먼저 존재
세계는 정신, 계획, 신의 섭리에 의해서 지배됨. 

플라톤 

 

피타고라스 학파 

- 종교집단

- 영혼불멸(육체간 전달)

- 영혼의 정화(도구: 수학)로 궁극의 정신세계 도달 

- 수를 신비화 하고 기하학과 수 이론을 발전시킴 (-> 헬레니즘 철학자, 르네상스 철학자에게 영향) 

 

플라톤

- 소크라테스의 제자 

- 우주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삶에 관심을 가짐(-> 도덕적, 윤리적인 문제로 바꿈) 

- 소크라테스 보다는 자연에 대한 관심을 가짐(-> 수학과 천문학 연구가 본질(이데아)의 세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봄) 

- 그가 세운 학교 아카데메이아 입구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 

- 세계에는 신이 먼저 있어서, 원질에 질서부여해 현재와 같은 세계를 창조함. 감각으로 현상계와 본질계(감각의 세계 저편)를 나눔. 

- 변하는 현상계와 불변하는 본질계(파르메니데스의 영향) 

- 현실계는 본질계를 본 따 만들어졌고, 4원소는 정다면체 

흙은 정육면체(정사각형으로 구성)

물은 정이십면체(정삼각형)

공기는 정팔면체(정삼각형)

불은 정사면체(정삼각형)

-> 궁극적으로 삼각형이라는 최소분해 가능, 이것이 분리 결합되어 변환가능하다고 봄.

 

- 우주는 완전한 공 형태, 그 자체 축으로 돎, 지구는 중심에 고정 <- 탈레스의 물 위에 떠 있는 반원형의 지구에서 발전 

지구 주위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항성 등이 붙어 있는 천구들이 둘러싸고 있음. 회전운동 함. 

이 천구들의 반지름은 수학적인 조화관계를 가짐. 지구 중심으로부터 달의 천구, 금성의 천구, 태양의 천구까지의 반지름이 

1: 2: 3 같은 조화로운 비율을 만들어냄. ( -> 우주는 조화와 질서에 따라 움직임) 

->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 같은 자연철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침 

 

아리스토텔레스

- 플라톤의 수제자

- 모든 연구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수행했음.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 필립 2세의 시의였음. (의학수업) -> 경험에 입각한 사물관찰 훈련 

- 뤼케이온 학교를 세움. 

- 그리스 헬레니즘 발달에 기여함. 

- 많은 학문 분야를 연구함.(공통의 기초 위에 서로 연관성을 지님) 

- 영혼은 육체와 함께 사멸함. 

-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부순 근대과학혁명의 완결자 17세기 뉴턴이 대학에 있을 때도 그의 학문은 유럽의 주요 교과목이었음. 

물리과학(형이상학적 전제 바탕으로 통일성을 갖춤-> 사변적, 독단적) 물질이론 + 운동이론 + 우주론 (서로 밀접관련) <- 엘레아 학파에 대한 검토와 비판에서 시작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불변성(변화는 환상)을 인정하나 변화 설명노력(잠재태 -> 실현태) , 비존재 부정 


생물학  정확한 관찰에 입각해 매우 근대적임. 다윈 이전에 생물이해에 크게 기여함. 
아래 원인중 2)형상인과 4)목적인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함.

발생학, 생태학, 생식, 분류학 등에 관해 풍부한 연구를 남김.  
새와 박쥐, 고래와 물고기를 분류하고, 오징어의 양성생식을 기술했으며, 무척주동물 분류는 근대 분류학의 린네보다 뛰어난 면이 있음. 


물체의 변화를 이해 위한 네 가지 원인 (물질이론, 우주론, 생물학은 잠재태의 현실화와 네가지 원인에 대한 규명을 바탕으로 이루어짐) 
1) 변화 후에도 남는 물질(질료인)
2) 변화 중에 현실로서 나타나는 형상(형상인) 
3)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운동인) 
4) 변화의 목적(목적인)

 

물질이론

 

- 엠페도클래스의 4원소설을 수용 + 4가지 성질을 도입함.  기본 원소들은 두 가지 성질을 가짐 

성질이 바뀌면 원소가 바뀜/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변환과정은 동적인 평행 상태에 있어 4원소 야은 일정하게 유지됨. 

 

차가움
건조함   습함
불  뜨거움 공기

 

- 자연운동(상승운동 or 낙하운동 ) 

불 

공기

흙 (지구의 중심)

 

별들의 등속원운동은 자연운동과 반대됨. -> 다섯 번째 원소 '아이테르'를 주장함. 아이테르는 변화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끊없없이 자연스러운 원운동을 함. 

 

 

 

 

 

아이테르 (등속 원운동) <- 원운동도 자연운동에 포함됨. !!

 

너머

달 ---

아래 

 


- 자연운동(상승운동 or 낙하운동 ) 강제운동, 변화, 생성, 소멸.. 이 지배  // 납과 나무를 물속에 넣는 실험 설명 

불 

공기

흙 (지구의 중심)

 

 

 

 

운동이론 

 

 

 

달 --

 

자연운동(자기 자치 찾는 운동): 낙하운동  + 강제운동(외부의 동인이 힘을 공급해야 함): 투사체 운동

 

낙하운동과 투사체운동은 많은 논쟁을 만들고 과학혁명으로 새로운 역학이 나올 때까지 자연철학자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침 

낙하운동에서 물체가 크면 클수록, 물체가 통과하는 매질의 밀도가 작을수록 빨리 떨어짐 

 

투사체운동에서 공중에 운동인이 없어도 날아가는 것처럼 보임.

-> 운동인을 공기에서 찾음.

-> 최초의 손은 투사체를 밀어 움직이고, 그 주위 공기에 물체를 미는 힘과 인접한 공기를 미는 힘을 전달하는 힘을 줌. 

-> 공기는 물체를 밀고, 동시에 바로 다음 장소에 있는 공기에 위의 두 가지 힘을 전달함. 

-> 공기가 미는 힘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해서 힘이 없어지면 자유낙하운동을 함. 

 

아리스토텔레스는 진공을 부정함. 진공이 존재한다면 매질의 밀도는 0이라서 낙하하는 물체는 무한의 속도를 가질 것이며, 투사체는 운동인과의 접촉이 없어진 뒤에 공기의 미는 힘을 받지 못하므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함. 이런 상황을 인정할 수 없어서 부정함. 

 

 

 

우주론 

 

자연철학자, 플라톤    <->    비판, 종합 -> 아리스토텔레스 '지구가 우주 중심에 놓인 우주체계' 제시

17세기 천문학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유럽세계에 받아들여짐. 

 

이전 

지구가 운동한다는 생각을 한 철학자 
-> 피타고라스의 제자 필룰라오스: 우주의 중심에는 불이 있고, 그 주위를 지구, 달, 태양, 다섯 개의 행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들이 붙어 있는 항성 천구가 차례대로 돌고 있는 우주체계를 고안함. 

 

 

- 경험에 입각하지 않고 4원소설의 논리적 결과로 지구가 중심에 놓인 체계를 제시 

-> 

 

 지구는 흙은 본래 위치인 우주의 중심을 포함.  지구가 강제로 달 위치로 옮겨진다면(지구의 중심에서 멀어짐.) 흙은 지구를 향해서 떨어지지 않고, 우주의 중심으로 떨어짐. 

 

- 지구를 아홉개의 구가 둘러싼 형태 

 

(가장안쪽)달의 천구 ) 수성, 금성, 태양의 천구, 외행성(화성, 목성, 토성), 항성천구 , (가장바깥 -- 항성 천구를 돌려주는 구) 

이 천구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부동의 동자'라고 함. 

 


 

제 3장 지구중심 우주체계의 확립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이론 바탕으로한 지구중심 우주체계 -> 헬레니즘 시대 프톨레마이오스 ->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우주체계 

<~1500년 가까이 우주체계를 지배함.~>: 로마시대와 중세 유럽에서 진리로 여겨짐. 

 

지구중심 우주체계

 

 

 

아폴로니오스: 

-행성들의 역행운동

-불균일 운동 

-사계절 길이의 차이  

-> 소원(epicycle)과 이심(eccentric)을 도입함.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돌지만 지구 중심 원이 아니라 이심을 중심으로 하는 원의 원주를 중심으로 원운동을 함. 

== 소원 위에서 원운동을 함으로써 행성의 역운동을 설명. 

 

히파르코스

- 천체현상을 더 정확히 설명하는 체계 만들기 위한 노력 ex) 태양의 대심위치 계산 

- 850개 이상의 천체를 관측함. ->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의 기본자료로 활용됨. 

-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면과 직각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세차운동도 발견 

 

프톨레마이오스 (종합)

 

-기원전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지구중심의 우주체계는 수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형태를 갖추게 됨. 

- 알렉산드리아에서 그 이전의 천문학 지식을 종합해 '알마게스트'라는 책을 저술 -> 천문학자들에게 큰 영향 

- 자신의 체계를 실제에 부합하는 게 아니고 천체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수학적 모델로 생각함. 

- 수직으로 올라간 공이 그 자리에 떨어지는 것 같은 물리적 이유로 거부

- 소심 + 이심 + 대심 모두 사용 (복잡해짐)

 

중심이 c인 소원 위에서 수성을 제외한 행성들이 돌고 있음.
이 소원은 우주의 중심 F 주위를 돌지만, c의 운동은 F에 균일하지 않고, 다른 중심인 대심 D에 균일함. 
수성의 경우 더 복잡해짐. c 중심의 소원이 대심 D에 균일하게 돌 때, 위치에 따라 도는 속도가 달라질 수 있음. 그리고 이 대심도 고정되지 않고 돌고 있음. 
-> 소원으로 역행운동을 설명하고, 대심으로 사계절의 길이가 다른 것을 설명함. 

근대 천문학으로 해석 

-> 근대 천문학은 태양중심이어서 화성의 역행운동은 자연스럽게 설명됨. (지구와 화성이 태양을 돌기 때문에 관측 가능) 
->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기 때문에 지구에서 행성의 속도를 관찰할 때 그 속도가 하상 일정하지 않음. 
행성의 속도는 태양 가까이서는 빨라지고, 먼 곳에서는 느려짐. 

 

역운동 : 행성의 같은방향으로 나아가다가 뒤로 움직이는 역운동 -> 소원(epicycle) 보조수단으로 설명

불균일성: 행성 속도가 일정하지 않음

-> 여러 기하학적 도구로 위 문제를 해결 

->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설명하려 한 결과 수 많은 천구가 뒤엉켜 아주 복잡한 우주체계를 만듦. 

 

- 가장 큰 문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지켜져 왔던 완전한 원운동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 !

- 알마게스트는 계승되지 못하고 잊혀졌다가 아랍 세계에서 고대 그리스어로 저술된 알마게스트를 아랍어로 번역 비판 연구 작업 이후 천문학 연구는 12세기 유럽으로 알려지고, 알마게스트가 다시 번역되어 유럽에서 천문학 연구가 일어나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우주체계  발표라는 결실을 얻게 됨. 

vs 

태양중심 우주체계

 

피타고라스의 제자 필룰라오스의 불 중심 우주체계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시대 인물 해라클레이데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나 자전을 하고, 금성과 수성은 태양 주위를 돔 

 

기원전 3세기 사모스 섬의 아리스타르코스:

-태양중심 코페르니쿠스 체계와 거의 같은 우주체계 제시함.

-태양과 달의 크기 및 그것들과 지구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를 계산함. 

 

지구가 태양 중심을 돌 때 나타나야 하는 시차가 관측되지 않는 이유는 항성 천구가 지구에서 매우 멀어서 지구가 공전함으로써 위치가 달라지면 지구상에서 바라본 별들의 위치도 변해야 하나 너무 멀어서 현상관측이 안됨. (설득노력) 

 

-고대 최초 태양중심 근대적 우주체계 제시한 의의 있음. 

-> (물리적, 종교적인 면에서 수용에 난점): 수직으로 떨어진 돌이 뒤에 떨어지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 떨어지는 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은 신에 대한 불경 -> 그래서 헬레니즘 시대에는 지구중심 우주체계가 수용됨.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은 그리스로 새로운 문화가 전래되고, 그리스 문화가 정복지(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르시아)로 전파되는 계기가 됨. (기원전 323~ 이집트가 로마제국에 넘어가는 기원전 30년 전까지 ~ 완전한 소멸은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1453년) 

 

대왕의 정복으로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어 철학자들은 자연보다 삶의 문제를 더 많이 다룸 ->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 

예외) 뤼케이온의 테오프라스토스가 스승의 연구를 보완하며 계속함. 

 

 

 

에피쿠로스  스토아 
즐거움을 통해 마음의 평안 추구 

창시자 에피쿠로스: 수많은 원자들이 공허 속을 빠른 속도로 움직임. 
욕망의 절제를 통해서 마음의 안식을 추구 

창시자 제논 : 세계는 가득 차 있고, 연속적이며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은 끊임없이 분할 될 수 있는 우주관을 가짐. 

우주도 생물처럼 하나의 거대한 생물체

 

->  두 철학 모두 우주의 여러 현상을 해석해 자연현상을 대할 때, 마음이 동요되어 안식을 잃는 일을 막기 위해서임. 자연철학이 가지는 위치가 제한적임. 

 

 

자연철학의 연구는 당연히 아테네가 중심이 되지 않고 다른 여러 곳에서 수행됨.

->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알렉산더 사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들은 학술 기관 '무세이온'을 세우고 지원함. (왕의 지원) 

 


 

제 4장 태양중심 우주체계의 등장 

아랍과학(8c~15c)은 서로마와 중세 유럽으로 계승되지 못한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시대의 과학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8c 중엽 그리스 과학 저작들이 아랍어로 번역됨(페르시아어와 시리아어로 된 의학과 천문학 서적) / 그리스어로 쓰인 서적들이 번역 (그리스어 -> 아랍어) / 9c 칼리프의 지원을 받으면 번역작업 진행( 알 마문 칼리프는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 연구센터를 세우고, 많은 지역에서 학자들을 초빙해 번역과 연구활동을 지원함.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 연구센터

- 그리스어 저작들을 구하기 위해 동로마제국으로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서 사들이고 번역 

이 저작들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및 모든 과학분야 저작들이 있었음 

 

 

- 번역 이후 소화 및 바빌로니아,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지의 지식과 결합시키는 작업과 독자적 발전 활동 전개됨. 

ex) 업적자 : 알 킨디, 알하이삼, 아비케나, 아베로에스 

 

아랍과학 11c 초 전성기/ 12c 부터 천문학 외에는 발달 미진 .. / 학문에 적대적인 이슬람 정통파가 득세했고, 아랍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나빠진 것에서 찾을 수 있음. 15까지 천문학 발전 후 정체.. 

 

 

아랍과학의 도입과 중세의 대학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학문과 이슬람화된 그리스 학문의 본격적 유입은 11c 말 이슬람이 지배했던 스페인 남부의 톨레도와 시칠리아섬이 유럽국가에 함락됨으로 시작됨. 

 

지적인 기아상태였던 유럽인들이 아랍어로 된 고대 학문들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함.

 

12c 초 유럽 전 지역에서 스페인과 남부 이탈리아로 학자들 모임. (아랍어 -> 스페인어 or 히브리어 -> 라틴어 )

-> 태양중심 체계형성에 기여 

스페인의 톨레도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

 

코페르니쿠스 

 

- 1543년 '천구의 회전에관하여' 책을 출판함, 르네상스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 -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체계에 대항할 수 있는 수학적으로 정교한 우주체계를 처음으로 내놓음.

 

- 신플라톤주의 영향-> 우주는 단순성, 질서, 조화의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됨. ->수학적으로 정교하지만 너무 복잡하고 원운동을 거부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 우주체계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음. 

 

헤라클레이데스, 아리스타르코스의 생각을 접하였고, 1510년경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생각을 하게 됨. 

 

'코멘타리올루스'라는 소책자에 이 생각을 담아 몇몇 천문학자에게 보냈으나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음. 조롱을 무서워함. 

-> 친구 레티쿠스로 하여금 그가 죽던 해인 1543년에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판케 해서 태양중심 우주체계를 발표함. 

 

문제점 

- 행성들이 붙어서 돌고있는 천구개념을 그대로 씀 

- 신플라톤주의 영향으로 천구의 원운동을 고수

-> 많은 소원을 도입해 복잡한 우주체계를 만듦. 

(극단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체계에서 지구와 태양 위치만 바꾼 결과가 나옴) 

-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면 시차가 관찰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보임. (별들이 지구에서 멀어서 관찰이 안됨) 

-> 시차에 대해 아리스타르코스와 같은 설명을 함. 

-> 시차확인은 19c 독일의 천문학자 베셀에 의해서 이루어짐. 

 

영향

-천문학자들에겐 큰 영향 but

일반인들에겐 수학적으로 복잡하고, 시차확인이 안되며,

종교적인 이유로 널리 인정못받음.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와 그의 제자는 성서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거부, 카톨릭 금서지정) 

 

 

티코 브라헤

 

덴마크의 벤이라는 섬에 '하늘의 성(Uraniborg)'라는 이름의 거대한 천체 관측소를 건설하고 정교하게 제작한 관측기구를 이용해 정렬적으로 별들을 관측함. 

 

지구가 여전히 우주중심

태양, 달, 항성 천구도 지구 주위를 돎

수성, 금성 , 화성, 토성은 태양 주위를 돎. 

 

고대 그리스의 해라클레이데스의 우주체계와 유사함. 

다섯개의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주장은 코페르니쿠스의 영향을 받음 

 

케플러

 

독일 출생이며,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도시학교 수학교사로 일했다. 그곳에서 달력을 만들었다. 

그것이 천문학 연구의 시작임. 1596년 '우주의 신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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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신비

 

태양중심의 우주체계를 더 깊이 탐구하지 않고, 우주에는 왜 여섯 개의 행성(수금지화목토) 밖에 존재하지 않는가? 신은 왜 여섯개의 행성을 창조했는가의 물음에서 시작함. 이것을 사변으로 해결함.  우주에는 정다면체가 다섯 개만 있고, 이 다섯이라는 숫자와 행성의 수가 여섯 개인 이유는 행성들이 여섯 개일 경우 행성 사이에 정다면체가 들어갈 공간이 정확하게 다섯 개 나오기 때문임. 

정다면체는 행성의 천구들 사이에 끼워져 있음.(포개져 잇음)  <- 플라톤의 네 개의 근원 물질이 원형이라고 주장한 것에 영향받음. 

 

 

 

 

 

그는 개신교도였느데, 그라츠에서 반종교개혁이 일어나 개종을 하지 않아 추방됨. 난민으로 프라하에 도착해 유명한 관측물리학자 티코 브라헤와 공동으로 천문학을 연구함. 1601년 티코 브라헤가 사망하고, 프라하에 수도를 두고 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가 케플러를 황실 수학자로 임명함으로써 그의 본격적인 천문학 연구가 꽃을 피우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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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 브라헤는 수학적인 재능이 업어서 케플러와 작업을 하고, 황실 연회에서 참석하고 티코는 죽음. 티코가 죽은 후 5년간 케플러는 화성의 궤도를 발견하기 위해 씨름했고, 그 결과 케플러의 1법칙과 2법칙을 발견함.  이 내용은 새로운 천문학에 실림. 

 

제 1 법칙 : 궤도가 타원을 그린다는 것 (행성 속도가 균일하지 않음)

제 2 법칙 : 행성과 태양을 잇는 선이 일정 시간 휩쓸고 지나간 면적은 항상 일정하다. 

 

1609년 '새로운 천문학'

 

1610년 갈릴레이의 '별들의 소식' 출간해 케플러의 관심을 끌게 됨. 

-> 화답으로 '별들의 사자와의 논의' 출판함. 

-> 갈릴레이와 서신교환 

 

루돌프 2세 죽은 후 오스트리아 란츠로 이주해 수학교사로 일하면서 천문학 연구를 게속해 

1618~1621년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의 기초'를 출간 

1618년 케플러의 제 3법칙을 발견함. 

 

1619년 '우주의 조화'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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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화의 조화에 3법칙이 실림. 

 

3법칙: 행성 주기의 제곱과 태양으로부터 행성까지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의 비는 일정함 

 

 

갈릴레이의 발견 

 

케플러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세 법칙을 발견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근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됨.

 

행성 궤도가 타원 -> 공 모양의 천구와 소원이 사라짐. 완전한 원운동에 대한 생각도 사라짐. 

 

그러나 수학적인 내용들이 많아 매우 어려워 일반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못 줌.

->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더 직접적인 증거가 있어야 했음. 

-> 갈릴레이가 해냄.

 

케플러와 갈릴레이는 17c 초 유럽에서 활동한 자연철학자들 중 가장 빼어난 업적을 내놓은 인물들이다. 당대에도 유명했음. 

 

1609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제작하여 별과 행성을 관찰함. (이건 평상시 관심사가 아니었음) 

-> 달이 지구와 비슷하게 생김, 목성의 위성 네개를 발견 이런 내용을 넣음. '별들의 소식' 에.. -> 이탈리아와 유럽에 반향을 일으킴. 

-> 케플러를 흥분시킴. 

 

망원경으로 목성의 네 개의 위성을 발견하고 목성 가까이 있는 위성이 멀리 있는 위성보다 빨리 도는 걸 발견함. 

 

망원경은 대상이 1000배나 크게 보이고 30배나 가까이 보이개 개량에 성공함. 

 


제 5장 갈릴레이와 종교재판 

 

- 갈릴레이의 '별들의 소식' 의 영향 

->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체계에 반하는 경험적 증거가 제시됨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발견에도 불구) :

 

1. 아리스토텔레스는 달을 경계로 아래는 4원소, 위에는 아이테르가 있는 원운동의 세계이지만, 달도 지구와 같이 4원소로 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함. 

 

2.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체계에서 지구는 세계의 중심이지만 목성의 위성이 발견됨으로 각 행성도 독자적 중심이 있다는 것을 밝힘. 태양중심 우주체제에 힘을 실음. 

 

사건경과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이후부터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우수성을 공식적으로 옹호했고, 이는 적대자들의 반발을 사서 로마 교황청을 통해 코페르니쿠스 체제를 퍼뜨리는 걸 금지시키려 함. 

 

갈릴레이는 로마 교황을 방문해 코페르니쿠스 체제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설득함. 그러나 1616년 교황청은 코페르니쿠스 체제를 대변 및 옹호하지 말라고 명령함. 그러나 1632년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를 출판해서 이를 반박함. 

 

1633년 로마 교황청에 소환되어 가택 종신형을 받음. (별들의 소식 때문)

 

별들의 소식으로 황실 수학자 케플러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음. 이탈리아 내에서 1610년 12월 콜레기움 로마눔의 수학교수 클라비우스가 목성의 위성을 확인하고 갈릴레이에게 통지한 것이 최초의 긍정적 반응. 

 

별들의 소식 발표 후 금성의 위상변화 등을 발견한 후 이제 계산이나 사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에 기초한 증거로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음. 적대자들이 카톨릭 교회를 움직여 반대함. 

 

로마의 친구들과 새 과학을 세우려는 '린제이 아카데미마' 회원으로 받아들여짐. (개인적인 해석이나 실험과 관찰에 입각한 해석을 중시) 

<->

로마의 에수회 대학 콜레기움 로마눔(아리스토텔레스적인 스콜라 철학을 따랐음) 에 대항 

 

이런 와중에 1620년 '시금자'를 완성함. 린제이 아카데미아 여러 회원이 돌려 읽고, 새로운 철학을 대변하며 예수회의 주장을 누를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짐. 1623년 출판되고 이듬해 새로운 교황이 선출됨. 새 교황은 새로운 철학에 호의적임. 갈릴레이와 잘 알고 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음. 그는 추기경 마페오 바르베리니로 피렌체 출신으로 교황 오르바누스 8세가 됨. 

 

교황에게 '시금자'를 헌정하고 교황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임. 예수회는 인정하지 않지만 교황의 권력에 의해 침묵함.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체제에 대한 단죄의 해제를 기대했으나 교황은 가설로 다루고 결론이 태양중심 체계에 유리하게 나와서 안된다고 결론냄. 

 

로마로 돌아온 갈릴레이는 교황의 제한적 허가나마 이용하기로 하고 태양중심 체제에 대한 책을 준비함. 린제이 아카데미아 회원들과 로마금서 목록 책임자나 추기경들의 검토를 거쳐서 1632년 '두 개의 대우주체계에 관한 대화'가 출판됨. 그리고 열화와 같은 논쟁을 불러일으킴.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심플리치오. 

지구가 움직인다는 살비아티

중립적인 사그레도 가 등장함. 

이탈리아어로 기술(일반인 타겟), 신 우수성 칭송(포장)

-> 예수회의 모함을 받았고, 1633년 갈릴레이는 1616년 금지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로마로 와서 종교재판 소환명령을 받음. 

하지만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하나의 가설로 다루고 있음. 교황 입장에선 얼마든지 봐줄 수 있었으나 1632년 교황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있었음. 교황은 예수회의 전통 스콜라주의에 힘을 싣어줄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어 린체이 아카데미아와 갈릴레이는 위기에 몰리게 됨. 교황은 그 상황에서 수구로 돌아선 입장을 천명하는 상징으로 종교재판에 갈릴레이를 소환함. 

 

추기경이자 현 교황의 조카인 프란체스코 바베리니는 갈릴레이에게 목숨을 구걸하라고 했음. 갈릴레이는 이를 받아들여 자기 잘못을 교황의 자비를 구하여 목숨을 건짐 . 그리고 참회를 상징하는 옷을 걸치고 태양중심 체계를 공개적으로 부정한 후 종신 가택연금 판결을 받음. 

 

 

 

 

 

출처: 인간과 과학(방송통신대학교 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