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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강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의 기준과 성격 (인식론) 본문

KNOU_CS/철학의 이해

14강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의 기준과 성격 (인식론)

2sac 2024. 7. 4. 21:36

 

 

 

진리란 참지식이다. 

 


 

생존조건에서 인간과 동물 모두 문제가 있음. 

동물 -> 본능으로 대응

인간 -> 본능 뿐 아니라 생각과 궁리(앎 == 지식)를 통해 대응 

 

그래서 지식 자체에 대한 반성적 고찰 수행이 필요함.

-> 인식론의 문제의식 

 

로크

인식론의 과제를 '인간 지식의 기원, 확실성 및 범위'에 대한 탐문으로 규정 

-> 인식론은 참된 인식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규범과학 

 

 

인식론 심리학 
참된 인식만 다루는 규범과학  참된 인식이냐 아니냐에 대한 구애됨 없이
인간의 심리적 인지과정을 다룸 

 

인식론  논리학 
사고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다룸  사고의 규범적 추론 형식과 규칙만 다룸
추론에 동원된 각 판단의 진위여부는 신경 안씀. 

 

-> 진리란 무엇이고?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과 사실의 일치여부를 확인 가능한가? 

 

 

아리스토텔레스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한다.

 

 

 

 

 


 

대응설 (모사설) 

 

대상 - 판단 

실재 - 관념

사물 - 지성

바른 대응 여부로 진리의 의미에 대한 견해 

 

모사하는 능력으로 감각과 이성이 있음.

-> 감각적 모사설과 이성적 모사설이 존재 

-> 한계

ex) 핵전쟁이 나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대응하는 상황이나 사건 자체가 원천적으로 현전하지 않는 판단들에 대해 적용할 수 없음. 

 

 

 

감각적 모사설

감각적 경험이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반영

감각적 경험에 반영된 대상에 대한 관념 == 그 대상에 대한 진리 

-> 한계:

1. 상식의 토대가 되나 보편적 진리 이론은 안됨. : 감각의 개인 차 -> 보편성 x 

2. 관념 - 실재의 일치라는 감각적 모사설의 주장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움. ex) 사과가 둥글다는 관념을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사과를 보지만 내가 보는 건 사과에 대한 나의 관념임. 

-> '관념 - 관념'의 일치에 불과 

3. 경험적 사실에 관한 일반지의 진리성을 뒷받침 못함. ex) 불이 나면 그곳이 어디든 모두 연기가 난다.  모든 코끼리는 죽는다. 

-> 판단의 문장이 전칭판단 형식이지만 포함된 모든 것을 다 감각적으로 모사할 수 없음. 

(<-> 단칭판단 : 이 말은 죽는다. 저 사과는 둥글다. 는 가능) 

 

 

버클리

존재는 지각이다. (있는 것은 지각된 관념 뿐) 

 

-> 유물론적 반영론

감각적 모사설에 대한비판은 단지 서구 관념론의 단선적인 시각일 뿐이며, 감각이야 말로 결국 실재를 반영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토대

-> 일회적인 반복적 모사를 반복해 다수인의 상호주관적 관념들을 비교, 종합하면 결국 대상 자체에 대한 일반적인 지각으로 실재를 바영하는 객관적 사실을 확립할 수 있음. (착각을 시정하는 것도 결국 감각적 모사의 반복과 재인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짐. _

 

 

이성적 모사설 

감각적 현상 배후의 본질을 감각이 아닌 이성으로 모사해야 그  대상에 대한 참된 진리를 포착할 수 있음. 

ex) 두 원의 접점은 하나이다. 를 보면 정확히 그려지지 않더라도 이성적 직관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 이성이 모사한 내용은 감각이 모사한 내용과 달리 개인차가 없는 보편적인 성격을 가짐. (플라톤의 이데아) 

-> 한계 

1. 이성이 본질을 직관한다고 해서 직관적 인식의 결과가 곧 본질이라는 보장이 없음. 그 직관도 사람마다 같지도 않음. 

같은 건 수학, 기하학, 논리학(순수과학적 대상)에 한정됨. (-> 진리의 보편성을 확보하나 적용범위가 제한됨. )

 

 

 

 

 


 

 

 

정합설 

보편적 진리의 기준을

관념 - 관념

판단 - 판단 

간의 정합 관계에서 찾음. 

ex) 우리집 고양이는 죽지 않는다. 

1. 대응설: 판단의 진리여부는 고양이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보거나 고의로 죽여봄으로 확인가능 (판단과 실재의 대응관계)

2. 정합설: 모든 동물은 죽는다. 우리집 고양이는 동물이다. 우리집 고양이는 죽는다. <-> 우리집 고양이는 죽지 않는다. 와 모순으로 허위(판단과 판단의 대응관계) 

 

정합여부와 모순여부를 판단해주는 

모순율과 연역규칙 

논리적 이성적 사유로 판정 

 

한계

-> 최초 전제인 상위판단은 무엇으로 보장받는지의 문제가 남음. 

최상위 판단은 스스로  진리성을 설며할 수 없음. 

모든 연역은 출발점의 판단이 의심스러우면 그로부터 연역된 모든 명제들의 내용적 진리성 또한 의심스러운 것이 됨. 

 

 

 


 

비판적 보완 

 

오늘날 참된 지식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는 과학적 진리가 경험에 기초한 것이자 보편타당성도 갖는 진리로 확립되기 위한 조건은?

-> 우선  정합설적 진리관을 보완하기 위해 최상위판단의 내용적 진리성을 뒷받침 해주는 연역 이외의 방법으로 감각 또는 이성적 직관으로 직접확인시주는 게 유일함. (정합설은 최초 최상위판단의 보완을 위해 대응설이 필요함.) -> 장합설과 대응설은 상호보완적 

==

학문체계 가운데 경험과학적 체계의 최상위판단은 감각적 모사설에 의해 얻어진 경험적 사실들과 그것을 일반화해 주는 귀납법의 원리에 의해 진리성이 담보됨. 

-> 추가적인 문제점이 있음. 

 

학문체계 가운데 이론과학적 지식체계에선 최상위판단은 감각적 경험과 무관하며, 이성적 모사설에 의해 진리성이 확보됨.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이성적 직관에 의해서 가능함. (논리적 수학적 진리는 명증적 직관과 논리적 연역으로부터 진리성을 보장받음.) 가장 보편성이 확립

 

 

 

 

추가적인 문제점 

-> 귀납적 일반화 자체가 경험적 사례 전체를 포함하지 않음. 

-> 경험적인 일반지의 원리로 제시된 귀납법 자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추가적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안됨. 

 

 

귀납법

구체적인 어떤 현상이나 사태가 예외 없이 똑같이 반복될 경우 그 부분적인 사례들에 기초해 경험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한 모든 사례에 대해 동일한 사태나 현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일반화 하는 원리 

->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일반화 한다는 점에서 비약임. (귀납적 비약)

-> 귀납적 비약에 정당성을 확보해주면 됨. 

비약하지 않으면 끝까지 일반지를 구할 수 없고, 비약을 통해 일반화하면 모든 사례를 다 확인 안했다는 문제에 봉착함. 

-> 귀납적 비약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자연의 제일성 the uniformity of nature' 라는 원리가 불가피하게 제시됨. 

 

 

존 스튜어트 밀 

자연의 진행과정은 한결같다(우주의 여러 현상에 이어서 과거의 일정한 사정 밑에 일어난 사례는 미래의 동일한 사정하에서도 동일한 사례로 발생한다. )

 

 '자연의 제일성 the uniformity of nature' 

-> 경험적으로 완전히 확증된 것은 아니지만 경험적 지식의 보편타당성을 기초지어 주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요구되지 않으면 안되는 학문 성립을 위한 최고 원리 

-> 하지만 이러한 원리또한 귀납에 의존한다는 접에서 원천적으로 순환의 오류에 빠지게 됨. 그래서 예외적인 귀납적 진술이자 귀납법을 가능케 하는 근본 대전제,증명 이전에 받아들여야 할 이론적 전제임. 

-> 그래서 경험과학적 지식 일반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원천적 개연성을 넘어 일반지로서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론적 전제를 불가피하게 깔고 들어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가설로서의 성격을 가짐 

 

 

 


 

근세 인식론과 칸트의 진리관 

  대응설적 관점 정합설적 관점 
           영국 경험론 

로크


선천적인 것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경험적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오직 후천적 경험만으로 지식을 귀납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 

지식의 보편성 이전에 지식의 기원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후천적 경험에 주목 

감각적 경험을 중시하여 겅혐적 객관성을 진리의 기본 조건으로 확립하는 데는 기여하였으나 경험적 지식의 개연성에 눈을 떠 회의론에 빠짐

-> 아래로 이어짐. 

과학의 가설 연역적 성격을 밝힌 포퍼의 반증주의,

논리실증주의의 등장 아래 논리학적 기반 위에서 정치한 인식론을 구축한 '영미 분석철학',  

과학적 정합체계를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보고 과학이ㅡ 역사를 이 패러다임 자체의 혁명적 전환으로 본 '쿤의 이론'
 
대륙    대륙 합리론 

데카르트 

후천적 경험은 보편성을 보장하지 못하므로 기하학적 진리와 같이 이성적 직관과 연역을 통해 획득되는 보편적 지식만을 진리로 삼아야 한다. 

진리의 조건으로서 지식의 보편성이 어떻게 확립될 것인가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선천적 이성에 주목 

진리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순수 이론적 진리에 대한 직관과 연역 과정상의 무모순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과학적 지식의 사실적 경험적 객관성을 도외시 하고 말았음. 

-> 20세기 후설의 현상학로 이어짐. 
     칸트의 진리관 
























비판적 인식론 

칸트 

합리론과 경험론의 장단점을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과학적 지식의 보편타당성의 근거를 제시하여 근세인식론의 꽃으로 불림. 칸트는 뉴턴 물리학 등 당시의 자연과학적 진리가 경험적 객관성과 논리적 필연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믿음. 

칸트의 과제는 이미 실질적 진리로 현존하는 그와 같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보편타당성을 갖는지 인식론적으로 해명 하는 것. 

보편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갖는 '진리의 보편타당성'을 기초 짓고,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실질적 진리인
'선험적 종합판단의 가능성' 을 탐색함. 이것을 가능케 하는 인간의 선천적 인식능력으로서 

1. 감성
2. 오성
3. 이성 

을 제시 

감성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아들여 지각(직관)을 성립시키는 주관의 기능

시간과 공간
감성이 작동하는 곳의 형식, 즉 시간과 공간은 주관속에서 선천적으로 자리하면서 일종의 관념을 담고 있는 선험적 형식
물론 절대적 시간과 공간은 주관 바깥에 있음. 모든 인식 대상이 주관속에서 관념으로만 주어지고 그 인식대상이 있는 터전이 시간과 공간이라면 그 주관적 관념이 있는 곳이 곧 인식대상이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결국 시간과 공간 역시 인식론적으로는 주관 속에 있다는 말임.  주관 속 시간과 공간에 들어온 관념은 잡다한 개별적 지각일 뿐 일반적 지식으로 보편성은 갖지 못한 상태임. 오성은 그러한 개별적 지각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기능임. 

오성
오성이 자신의 선천적인 형식인 범주를 사용하여 지각들에 보편성을 부여함. 범주는 그 기능이 인간 모두 동일하다는 점에서 초개인적 주관이라고 불림. 쉽게 말해 이간 모두에게 동일하게 장착된 오성의 범주 프로그램에 의해 감성형식에 입력된 개별적인 지각들은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 정리, 정돈되어 보편타당한 일반지(지식)로 산출됨. 

보편타당한 일반지
인간 고유의 선천적 주관 형식에 의해 보편타당성을 부여받은 것, 달리 말해 인간 오성이 갖춘 범주라는 고유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진 지식으로 진리는 단순히 모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구성 된 것. (= 칸트의 구성설)
-> 칸트 '인간은 자연의 입법자'

자연
우리가 인지하는 자연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개별적인 지각들에 오성 형식이 보편성을 부여하여 보편타당한 법칙으로 구성해 낸, '인간이 인간의 방식으로 만들어 낸 자연' 임. (= 인간표 지식) 
ex) 태양이 지구를 돈다에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로 인식이 바뀜


물자체
주관적 관념의 출처이자 원인으로서 관념 배후의 대상 자체는 인간의 인식기능으로는 다가설 수 없는 불가지의 것이며,
관념세계 내지 현상계 너머의 물자체는 초감성적 예지계로 과학적 인식 너머의 불가지의 세계로 남음. 


진리
주관적 관념들의 세계, 즉 감성계 또는 현상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불가지론
일반적으로 어떤 명제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보통 불가지론은 종교적 관점에서 논의되므로 이때 그 '어떤 명제'는 신이나 초월자, 혹은 초자연 현상에 대한 관점이 된다. 종교적 관점에서의 불가지론은 간단하게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다'로 요약할 수 있다.(출처: 나무위키)


이성
초감각적 예지계가 비록 인식의 영역에 들어오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인간이 알아차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 초감각적 예지계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것에 대해 사유하는 인간의 인식기능이 다름 아닌 이성이다. 
우리가 말하는 넓은 의미의 이성이 아니라 경험적 관념들에 합리적 보편성을 부여하는 오성과도 다른 초감성적인 것을 사유하는 특별한 의미의 이성임.  이성은 그것이 무엇이건 지각할 수 없지만 그 존재를 예지적으로 직관하고 그 존재에 대해 이리저리 사유할 수는 있다. 이 사유내용은 경험적 지각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인식의 측면에서 보면 이율배반적인 지식을 낳는다. 



이율배반(二律背反)은 논리적으로도 사실적(事實的)으로도 동등한 근거가 성립하면서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두 명제의 관계를 뜻한다.
  1. '세계는 시간적으로도 시초가 있으며 공간적으로도 한정된 것이다.'
  2. '세계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무한이다.'
이것은 칸트 내세운 유명한 이율배반의 하나이다.
이율배반을 정밀하게 검토하면 양자가 모두 일면에서만 옳은 경우가 많으며, 또한 드물게는 그 한편이나 양편이 모두 그릇된 경우도 있다. 둘다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지식임. (출처: 위키)

-> 감성과 오성은 과학을 성립시키고, 이성은 형이상학을 성립시킨다. 칸트는 과학과 형이상학에 각각의 고유한 자리를 찾아주었다는데 철학사에 큰 의미를 가짐. 물자체가 형이상학으로 넘어감. 하지만 이것은 후대 인식론의 비판의 대상이됨. 

 

 


생철학과 해석학 

 

칸트의 보편을 강조하는 이성주의가 발전하며 19세기 사상계를 압도한다. 이른바 근대 모더니즘이 주류 철학사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진리의 기본 조건이 보편성과 객관성, 합리성과 논리성이라 해도 모든 것이 다 합리적으로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근대 모더니즘적 시각이 갖는 한계를 비판하고 진리에 관한 비합리주의적 관점을 제기하는 사상가들이 19세기 후반 나타났다. 

 

-> 생철학의 선구자들: 니체, 쇼펜하우어, 베르그송 

 

이들은 비합리적이고 천시되거나 배제되어 왔던 충동, 의지, 본능, 생 등에 주목하고 그것이 오히려 참된 인식의 근원이자 기반임을 강조한다. (쇼펜하우어 '삶에의 의지', 니체 '힘에의 의지')

 

생철학에서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것 == 그 대상에만 고유한 생의 파동을 포착하는 것 

대상세계란 고정치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로 엉켜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므로 살아 있는 생명 그것을 이식하는 방법은 분석이 아닌 직관!

by 베르그송 

 

 

 

 

직관 <-> 분석 

 

분석: 대상을 바깥에서 분할하고 고정시켜 파악 

 

직관: 대상 속으로 들어가서 그 대상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내부적인 것과 합일하는 정신적 공감의 방법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와 다름) 

지정의를 총망라하여 대상을 향하고 있는 인식주관과 주관을 향하고 있는 대상이 전적이고도 일시적으로 합일하는 것으로 마치 예술가의 직관과 같은 것 

 

 

 

 

 

but 생철학도 학문으로 직관을 강조하는 베르그송의 철학은 생에 대한 학문적 인식이라기 보다 오히려 세계의 근원을 생성과 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형이상학에 가까움.

 

생동하고 운동하는 생을 참의 실상으로 상정하면서도 이것을 좀 더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파악하는 시도 

-> 독일 딜타이의 해석학 

 

 

딜타이 

살아 움직이는 것, 즉 생에 대한 이식은 오로지 체험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음. 체험이란 생을 직접 파악하는 방법임. 

 

체험이 생의 내적계기라면 표현은 생의 외적 계기 

딜타이는 이 외적 표현에 대한 파악을 '이해' 라고 함. 

 

이해

몸짓, 표정 등에 대한 이해는 학문적 인식수준의 것이라 말하기 어려움. 

-> 살아있는 생을 표현하면서 우리 앞에 학문적 인식이 가능한 어느 정도 고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주어진 것(통로)은 

'역사, 예술작품, 풍속, 제도' 등이 있음. = 음악의 악보같은 것들임. 

이런 것들은 고유의 감동과 선율을 반복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해주며 '지속적 표현에 대한 학문적 파악' 이라고도 하며 다른 말로 '해석' 이라고 한다. 

-> 딜타이의 해석학이란 생에 대한 그러한 학문적인 접근방식을 말한다. 

 

이와 같이 생의 내용이 체험, 표현, 이해 내지 해석에서 더 풍부해지는 것을 딜타이는 원환운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러한 원환운동을 통해 인간다운 삶의 깊이를 이루어 가는 존재이며 해석학은 생동하는 인간삶의 총체적 내적 연관을 해명해 주는 학문적 시도이다. 

 

 

 


 

 

 

불확정성 원리와 실용주의 

 

조작주의, 실용주의

인식과 행동이 상호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하에 행동이 진리 인식에 미치는 결정적 영향에 주목하는 견해

 

 

 

 

 

조작주의 

-> 인식은 그것에 수반되는 구체적 행동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의 물리학자 브리지먼은 현대 과학의 방법론적 핵심으로서 실험만 봐도  행위 주체의 능동적 행동, 즉 조작이 필연적으로 개입된다고 함.  이것은 인간의 행동이 인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하여 인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결국 실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가 대상 그대로의 진리일 수 없음을 말해 줌. 

 

조작

원래 행동, 작업, 운전, 수술, 작전, 실험 등을 의미하지만, 여기선 그저 바라보고 명상한다는 뜻의 '테오리아'와 반대로 과학에서의 실험에서와 같이 대상에 계획적, 기술적으로 간섭하여 이것을 변화시키는 과학적 조치를 가리킴.  이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뒷받침 됨. 

 

불확정성의 원리 

대상 자체에 대한 확정적인 인식이란 인식행위로서 조작과정이 필연적으로 개입하는한 불가능함을 일깨워준다.

ex) 미시현상인 전자의 속도를 관찰하려면 빛이라는 에너지를 가하는 등 일정한조작을 대상에 가해야 하는데, 일정한 한도를 넘어서면 그 조작이 이미 전자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므로 전자의 속도에 대한 실험적 관찰치는 다만 개연적일 뿐 확정지을 수 없음. 그렇다고 빛을 가하지 않으면 관찰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과학적 지식이 실험을 기반으로 하는 한, 조작주의의 관점은 인식론의 측면에서 과학적, 지식의 한계와 본질에 대한 의미 있는 시사를 던져줌. 

 

 

 

 

 

 

 

 

 

실용주의

 

듀이와 제임스로 대표됨. 

 

진리가 유용성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의 행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함. 

 

유용성

어떤 문제상황에 대한 실제적인 효과를 의미함. 가령 어떤 관념이 참인가 거짓인가는 그 관념을 바탕으로 한 예측이 행위를 통한 검증 즉 실험에 의해 맞아 떨어지는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고, 그 예측이 삶의 문제 해결과 관련된 것인 한, 그 결정은 삶의 유용성과 직결된다는 것임. 듀이는 생이 탐구의 연속이라고 주장하면서, 탐구를 5단계로 나눔. 

 

 

< 탐구의 5단계 >

1. 불확정적 상황

2. 가설의 설정

3. 추리

4. 실험

5. 확정적 상황 

 

 

듀이의 탐구 이론에 따르면 앎이란 주관이 객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앎이란 이 길을 택하면 좋은 결과에 이를 것이라 예상하고 그 길을 실제로 택하여 예상된 결과를 확보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하는 것을 말한다. 

ex) 산속에 길을 잃은 사람이 소 발자국을 따라가면 집이 나올 것이다라고 판단한 것은 진리도 허위도 아니며, 결과를 얻었을 때, 맞았으면 진리가 된다. 

 

진리인식

불확정한 문제상황에서 확정된 상황, 즉 문제해결상황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함. 

 

안다는 것

미릿속에서 이러지러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상황의 해결을 가져다주는 실천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 실용주의는 이식을 문제해결을 위한 실험적 시도로 이해함. 이처럼 실용주의는 미국에서 생겨난 사상이다. 신대륙에 처음 도착한 미국인에게 중요한것은 생존의 터전을 확보하는 것이었음. 미지의 땅을 개척하며 몸소 부딪힐 수 밖에 없었음. 이러한 역사에서 실용주의는 개척정신에서 연원함. 

 

 


종합- 진리의 본질과 성격 

 

과학적 진리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짐 

- 명증적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보편적 원리와 그로부터 연역된 지식들 

 

- 감각적 경험들의 일반화를 통해서 얻어진 귀납적 지식들로 이러우진 보편타당한 체계지 

(경험과학을 구성하는 귀납적 지식은 자여의 제일성이라는 일종의 이론적 전제에 의존해 일반지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이론적 전제가 학문의 성립을 위해 요청된, 말 그대로 '이론적 전제'인 한, 그것에 의존하여 성립된 귀납적 일반지들은 언제라도 뒤엎어질 수 있는 개연지 내지 잠정적 가설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 

 

 

하지만 귀납적 일반지가 개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과학적 진리(경험과학적)에 대한 회의를 부추기거나 회의하는 근거로 여길 필요는 없는데, 우리는 '돌을 던지면 아래로 떨어진다'는 일반지가 일부 사례만을 토대로 얻어진 귀납지에 불과하다고 해서 나머지 돌을 모두 던져볼 필요는 없음. 또한 경험적 지식이라고 해서 그 지식의 진리성 여부 일체를 항상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만을 통해 확인하지도 않음. 오히려 이런 경우 연역의 방식, 즉 그 경험적 판단과 관련된 기성의 체계에 그 판단이 정합되느냐로 판정함.

 

 

-> 과학적 지식(학문적 지식) =

 

 위와 같은 귀납법을 통해 얻어진 일반지들  

+

수학과 기하학, 논리학적 진리가 명증적인 직관을 통해 얻어진 진리 및 그것으로부터 연역된 보편지

들로 구성된 정합체계임. 

 

 

 

->  이런 면에서 귀납법과 연역법은 지식 형성의 본질적이고도 핵심적인 바탕이 되는 것이자, 모든 과학적 진리 내지 학문적 지식의 굳건한 방법론적 토대가 됨. 

 

 

 

 

칸트의 진리관 

 

경험적 일반지를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전제들이나 논리적 규칙들이 인간의 이성능력 속에 이미 선천적으로 구비되어 있는 것을 꺠우쳐 줌.

그리고 과학적 진리라는 것이 단순히 인간에 의해 수동적을 모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천적인 감성능력에 의해 해석되고 가공된 후 적극적으로 오성능력에 의해 구성된 인간표 진리임을 드러내주어 인식론 역사에서 혁명적인 의의를 지님.

 

그러나 

 

보편타당성을 부여받기 전 지각들(감각적 경험의 재료)은 관찰과 실험수단이 바뀌면 언제나 보완되거나 추가될 수 있고 언제라도 보완되거나 추가되고 바뀔 수 있음.

 

과학적 보편지 = 발견 자료 + 자료 해석방식과 체계 (내적 정합성을 유지하는 동안에만 통용되는 잠정적인 보편적 진리이지 영구불변한 절대적 보편지는 아님. -> 이런 의미에서 과학적 진리는 본질적으로 가설의 성격을 가짐. 

 

 

 

 

칸트 이후 

 

모든 존재는 정지해 있지 않고 흐름 속에 있으며, 대상에 대한 인식은 그 흐름의 역동성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직관이나 공감 또는 해석을 통해 인지되어야 함을 배웠음. 

-> 분석주의적 진리관은 대상에 따라 부분적인 진리만을 드러내느 제한적인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음. 

 

이른바 변증법적 진리관이나 직관주의적 진리관으로 불리는 이론들은 분석주의적, 경험주의적, 객관주의적 인식론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생성과 운동까지 인식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또 다른 형태의 진리이론이라고 할 수 있음. 이러한 진리 이론은 과학적 지닐보다는 예술적 직관 또는 역사적 흐름을 해명하는데 보다 유리한 것으로 평가됨. 

 

과학적 진리란 새로우 자료들의 발견과 그것들의 귀납 또는 오성에 의한 범주화를 통해 드러난 일반적 보편지, 그리고 연역에 의한 그것들의 정합적 체계지로서 언제나 새로운 진리로 다시 태어나는 열린 지식체계이다. 인간의 지성은 그러한 진리의 개방성을 통해 변천의 행보를 거듭함. 

 

 

 

 

 

출처: 철학의 이해(방송통신대학교 교재)